네타냐후의 전쟁: 중동을 화약고로 만든 위험한 도박

2025. 6. 20. 12:00문학 지식인

 

 

피해자의 가면을 쓴 가해자: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을 고발한다

서론: 전쟁의 북소리를 울리는 나라, 이스라엘

중동의 모래바람은 다시금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연일 보도되는 공습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세계는 위태로운 평화의 줄을 놓치고 있다.

이 모든 긴장의 진원지에 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단순한 지역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

자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전쟁 설계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갈등을 먹고사는 지도자

이 비극적 드라마의 중심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도박판에 올린 지도자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총리직에 복귀한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연정을 구성했다.

아랍계 추방과 팔레스타인 테러를 옹호해 온 이타마르 벤그비르를 국가안보장관에,

역시 극우 성향의 베잘렐 스모트리흐를 재무장관에 앉히는 등,

그의 정부는 시작부터 강경 노선을 예고했다. 

 

네타냐후는 집권하자마자 사법부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사법 개혁'을 밀어붙였다.

대법원이 법률을 위헌으로 판단해도 의회 다수결로 뒤집을 수 있게 하는 이 법안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독재화 시도'라는 거센 비판을 받으며 이스라엘 사회를 극심한 분열로 몰아넣었다.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던 그가 사법부를 약화시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네타냐후 퇴진"을 외쳤다.

그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고, 연정 붕괴와 실각 위기까지 거론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네타냐후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위기를 돌파하는 전형적인

'전쟁 몰이(Wag the Dog)'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쏟아냈다.

서안지구 내 불법 정착촌을 합법화하고, 팔레스타인 국기 게양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으며,

테러 혐의자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는 지지율이 필요할 때마다 팔레스타인 강경책으로

대중의 관심을 돌려 자신의 비리를 덮으려 한다는 오랜 비판과 정확히 일치하는 행보였다. 

0123
팔레스타인 학살을 아시나요?

이란과의 전면전 위기: 계산된 도발인가, 광기인가?

팔레스타인 탄압을 넘어, 네타냐후의 시선은 더 큰 상대를 향했다.

 

바로 이란이다.

 

오랜 '그림자 전쟁'을 끝내고 공공연한 무력 충돌로 비화시킨 것은 이스라엘의 선제 도발이었다.

2024년 4월, 이스라엘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하여 이란의 주권 영토를 침범했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위험천만한 도발이었다.

 

정점은 2025년 6월 13일 새벽에 감행된 '라이징 라이온 작전(Operation Rising Lion)'이었다.

F-35I 스텔스 전투기를 포함한 200여 대의 전투기가 동원되어 이란의 100여 개 목표물에 330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공격 목표는 나탄즈와 포르도우의 핵심 핵시설, 미사일 생산 공장, 그리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지휘관들이었다.

이 공습으로 첫날에만 어린이 29명을 포함해 78명의 이란인이 사망했고, 테헤란의 14층 아파트가 붕괴되는 등 민간인 피해도 속출했다.

이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까지 염두에 둔 듯한 무모한 공격이었다.

날짜 (2025년) 작전명 / 사건 주체 주요 내용 보고된 피해
6월 13일 (새벽) "라이징 라이온 작전" 이스라엘 F-35 등 전투기 200여 대 동원, 이란 핵시설(나탄즈, 포르도우) 및 군 지휘부 등 100여 개 목표물 공습  이란 측: 사망 78명(어린이 29명 포함), 군 지휘관 사망 
6월 13일 (밤) "진정한 약속 3 작전" 이란 이스라엘의 핵 과학자 및 군 지휘관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 및 드론 발사  이스라엘 측: 텔아비브 등 전역에 사이렌, 1차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 3명, 부상 170여 명 

침묵의 동조: 전쟁을 지지하는 이스라엘의 민낯

네타냐후의 이러한 전쟁 도발이 단순히 한 지도자의 광기 어린 행동만은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그의 행동은 이스라엘 국민의 암묵적, 혹은 적극적 지지 위에 서 있다.

이란 공습 이후,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의 지지율은 급등하며 제1당의 위치를 회복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스라엘 국민의 75%가 이란 침공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네타냐후를 비토하던 야당조차 이란과의 전쟁을 지지하며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사법 개혁 반대와 가자지구 전쟁을 비판하던 주간 시위는 자취를 감췄고,

언론의 관심은 그의 부패 혐의 재판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이는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이란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오랜 선전의 결과물이다.

지도자가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안보 불안에 길들여진 국민은

그를 지지하며 결집하는 위험한 피드백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이 위험한 게임의 침묵하는 동조자이자 적극적인 참여자인 셈이다.

피해자의 서사: 2000년 박해의 역사

이스라엘의 호전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집단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피해자 서사'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2000년간 나라 없이 떠돌며 겪었던 박해와 학살의 역사는 유대인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

이 깊은 상처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자,

동시에 그들의 가해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는 비극의 시작점이다.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멍에

 

유대인 박해의 뿌리는 기독교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유대인 군중이 묘사된다.

사형 집행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프레임은

유대인에게 씌워진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되었다.

 

4세기 신학자 크리소스톰은 유대인을 '악마와 춤추는 자들', '상습적인 살인자들'이라 비난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들을 '영원히 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로 규정했다.

이러한 신학적 낙인은 유럽 사회 전체에 반유대주의 정서를 깊이 뿌리내리게 했고,

유대인을 종교적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2025.05.23 - [문학 지식인] - 로마의 야만성 : 유럽 '깡패 DNA' 역사적 기원 파헤치기

 

로마의 야만성 : 유럽 '깡패 DNA' 역사적 기원 파헤치기

로마 야만성: 유럽 깡패 DNA의 기원 심층 탐구 유럽 역사의 장대한 서사 이면에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반복된 야만성과 이기주의의 어두운 단면이 존재합니다.아프

djjjangs.tistory.com

 

이는 단순한 종교적 반목을 넘어, 이후 천 년 넘게 이어질 끔찍한 박해의 신학적,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십자군의 칼날 아래: 중세 유럽의 유대인 학살

종교적 혐오가 조직적인 폭력으로 폭발한 것은 11세기 십자군 운동이었다.

'이교도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 아래 모인 십자군은,

유럽 내부에 있던 또 다른 '이단'인 유대인에게 칼날을 돌렸다. 

1096년 프랑스 루앙에서 시작된 유대인 학살은 라인강 연안 도시들로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명분은 이단 척결이었지만, 현실은 약탈에 가까웠다.

당시 봉건제 사회에서 토지 소유가 금지되었던 유대인들은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했는데,

이는 십자군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십자군은 유대인 마을을 습격해 학살하고 재산을 약탈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제도화되었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유대인에게 노란색 모자나 표식을 달아 식별하도록 강요했고,

특정 지역에 격리 수용하는 '게토'가 1516년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세워졌다.

종교적 타자화가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격리로 이어진 것이다.

(타자화(他者化)는 어떤 대상을 자신과 분리된 '타자'로 인식하고, 그로 인해 차별이나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집단을 자신과 다르게 규정하고 차별하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

 

2025.05.24 - [문학 지식인] - 유럽 우월주의의 민낯: 로마발(發) 폭력 DNA 추적 (2부)

 

유럽 우월주의의 민낯: 로마발(發) 폭력 DNA 추적 (2부)

로마 DNA, 식민주의 폭력의 뿌리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처절하게 외칩니다. "유대인에게 눈이 없소? 손이 없소?... 우리를 찌르면 피가

djjjangs.tistory.com

 

홀로코스트: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과 그 상흔

수 세기에 걸친 증오와 차별은 20세기 나치 독일에 의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다.

나치는 기존의 반유대주의를 '과학적' 인종주의로 포장했다.

그들은 유대인을 종교 집단이 아닌, 아리아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오염시키는 '기생충 같은 열등 인종'으로 규정했다.

학살은 지극히 체계적이고 관료적으로 진행되었다.

  • 법적 배제: 1935년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하여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독일인과의 결혼을 금지했다. 이는 유대인을 독일 사회로부터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조치였다. 
  • 사회적 폭력과 격리: 1938년 '수정의 밤(Kristallnacht)' 사건을 통해 유대인 상점과 회당을 파괴하고 수만 명을 체포하며 공공연한 폭력을 자행했다. 이후 폴란드를 침공하고 바르샤바 등지에 거대한 게토를 만들어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비위생적인 환경에 강제 수용했다. 
  •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 1942년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 절멸 계획이 공식화되었다. [20] 동유럽에서는 '아인자츠그루펜'이라는 특수부대가 마을을 돌며 100만 명 이상을 총살했고,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등 절멸 수용소에서는 '치클론 B' 독가스를 이용한 산업적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끔찍한 '최종 해결책'으로 인해 당시 유럽 유대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150만 명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홀로코스트는 유대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전 세계는 이 비극 앞에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가해자의 서사: 팔레스타인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나라

그러나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의 잿더미 위에서 탄생한 국가는,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민족에게 가해자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역사를 무기 삼아, 그들은 이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2000년의 박해 역사는 이제 70여 년간의 압제 역사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전락했다.

나크바, 끝나지 않은 대재앙

팔레스타인인들에게 1948년 5월 15일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이다.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하여 시오니스트 민병대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조직적인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500개가 넘는 팔레스타인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었고, 약 15,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당했다.

그리고 약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1947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탄 배에는

"독일인들이 우리 집을 파괴했다. 우리의 희망을 파괴하지 말라"

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947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탄 배에는

"독일인들이 우리 집을 파괴했다. 우리의 희망을 파괴하지 말라"

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947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탄 배에는 "독일인들이 우리 집을 파괴했다. 우리의 희망을 파괴하지 말라" 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파괴하고 그들의 희망을 짓밟았다.

나크바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점령과 봉쇄, 추방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의 재앙이다.

그들은 독일을 욕하면서 자신들의 모습에서 독일의 나치가 있음을 보지 못하는가?

미국의 아메리칸 원주민 학살, 중동에서 재현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단순히 두 국가 간의 영토 분쟁으로 보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이 갈등의 핵심은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Colonialism)'라는 틀로 설명해야 한다.

 

이는 외부에서 온 정착민 집단이 원주민을 제거, 대체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여

새로운 주권 국가를 세우는 식민주의 형태를 말한다.

미국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호주가 애버리지니에게 자행했던 피의 역사가

오늘날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착민 식민주의의 목표는 원주민과의 공존이 아니라 원주민의 소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정책이 일관되게 이해된다.

 

1948년의 나크바는 원주민의 대규모 '제거'였고,

국제법상 불법인 유대인 정착촌의 끊임없는 확장은 점진적인 '대체' 과정이며,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영구적 배제'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행동은 복잡한 안보 논리가 아니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밀어내는 단순하고 잔혹한 식민주의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https://youtu.be/fuC1vlUIj98?si=fqXXrEIswfH4aVSM

 

끝없이 확장되는 유대인 정착촌과 무너지는 팔레스타인의 삶

정착민 식민주의의 가장 명백한 증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이다.

현재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는

7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정착민이 살고 있다. 

네타냐후 정부는 정착촌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공언하며,

과거 불법으로 간주되던 '전초기지(Outpost)'들마저 합법화하고 있다. 

 

이 정착촌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포위하고 고립시키며 그들의 농지와 수원지를 빼앗는다.

정착민 전용도로가 거미줄처럼 건설되어 팔레스타인 영토를 조각내고,

이스라엘 군대가 정착촌을 보호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한다.

 

이는 사실상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시스템이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정착촌 건설이 '두 국가 해법'의 물리적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애초에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누가 중동을 화약고로 만들었는가?


역사의 긴 흐름과 현재의 참혹한 현실을 종합해 볼 때,

중동을 불안정한 화약고로 만든 핵심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불법 점령의 지속, 가자지구에 대한 비인간적인 봉쇄, 국제법을 무시한 정착촌 확장,

그리고 이란과 같은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도발은 모두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불안정의 핵심 요소들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의 악순환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의도된 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미국의 '철통같은' 지지, 그 이면에 숨겨진 계산

이스라엘이 이토록 무모한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의 '철통같은(ironclad)' 지지가 있다.

하지만 이 지지는 민주주의나 인권이라는 가치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미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 계산에 따른 것이다.

 

미국에게 이스라엘은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지이자

수에즈 운하라는 핵심 해상 무역로가 위치한 중동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대리인이자 전초기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과거 상원의원 시절 했던 발언은 미국의 속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없었다면, 미국은 이 지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만들어내야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중동 패권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팔레스타인의 인권과 생명은 그 거대한 지정학적 체스판 위에서 손쉽게 희생되는 졸에 불과하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제언: 맹목적 지지를 거두고 진실을 마주하라

이제는 피해자의 가면 뒤에 숨은 가해자의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00년의 피해자 서사는 또 다른 민족을 향한 70여 년간의 가해자 서사를 결코 덮을 수 없다.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그들의 편을 드는 것은 결코 정의로운 일이 될 수 없다.

진정한 평화는 억압자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묻고 국제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점령을 끝내고, 정착촌을 해체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만이

중동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낼 유일한 길이다.

더 이상 역사적 비극을 방패 삼아 자행되는 또 다른 비극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